16 나훈아 열풍, 갈무리 무시로 뜻은

16 나훈아 열풍, 갈무리 무시로 뜻은

1966년도에 발매된 차중락 님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입니다. 이 노래는 엘비스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곡입니다.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입니다. 가을에만 느끼는 감정과 추억들을 노래하고 있어서 듣고 있다면야 심란해지기도 합니다. 추억과 사랑에 대한 감정을 떠오르게 해서 가끔씩 찾아 듣고는 합니다. 나훈아 님의 목소리로 낙엽 따라 가버린 주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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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와 결혼, 그리고 이혼

김지미와 결혼, 그리고 이혼

1976년 7월 결혼선언을 하는 나훈아와 김지미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연상 그것도 7살이나 연상인 점은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이다 더군다나 한번의 결혼과 이혼 전력이 있는 김지미는 나훈아보다. 나이도 많아서 떳떳하게 착수하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옛날 이야기다 두 인원은 결혼선언을 했지만 결혼식은 생략하고 사실혼 상태로 6년을 지내다가 정식으로 1982년 5월 이혼을 발표하며 헤어졌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고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평했고, 김지미는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스토커의 공격으로 얼굴이 찔려 72바늘을 꿰맸다

1972년 6월 4일, 어느 스토커 같은 사람이 사입니다. 병 파편으로 나훈아의 왼쪽 얼굴을 찔렀고 이 사고로 나훈아는 72바늘을 꿰매야 했고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다 당시 목격자인 이상벽 씨의 증언에 의하면 괴한이 처음 난입했을 때는 무대에서 싸우는 퍼포먼스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혈사태가 일어나자 사태 파악을 해서 괴한을 제압했다고. 이 사건을 남진 측에서 사주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킨 나훈아

2018년 남북화목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때 북한에서 나훈아의 참석을 요구했던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김정은이 도종환에게 나훈아는 안왔냐고 묻자 도종환이 스케줄 때문에 못 왔다고 대답했는데 이에 김정은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2022년 6월 나훈아는 콘서트 중에 자기 노래는 다. 서정적인데 고모부장성택를 처형하고, 이복형김정남을 암살하고, 회의 때 존다고 사람현영철 죽이는 뚱땡이 살인마 앞에서 사랑 노래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오냐고 김정은을 정면으로 디스했다.

김정은 옆에 있다면야 노래가 아니라 귓방망이 날리는 것 밖에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나훈아의 이런 점이 너무 멋지다 어느 누가 감히 저렇게 통쾌하게 북한의 뚱땡이 김정은을 향해 한 방 시원하게 날릴 수가 있겠는가? 당시 가왕이라 불리던 조용필은 냅다.

가수 강진의 0번 째 은인이 된 사연

강진은 가수로 데뷔하고 히트곡이 없어 고전했는데 그의 아내가 땡벌을 이야기 했고, 강진도 곡이 마음에 들어서 나훈아를 직접 찾아가 저에게 이 곡을 주시면 저명한 가수가 되어보겠다고 부탁을 했다

나훈아는 강진에게 노래를 불러서 보내봐라고 했고 강진의 노래를 들은 나훈아는 강진에게 맞도록 멜로디와 가사를 수정하고 편곡해서 줬다고 합니다.

남진과의 라이벌 구도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부터 라이벌로 경쟁했고, 팬덤도 확연한 색의 갈라졌다. 언론이나 대중들도 두 가수를 라이벌 구도로 제작하기 딱 좋은 자연생태계를 가지고 있었음 남진은 곱상한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로 대중성이 강했고, 나훈아는 대조적으로 외모가 남성적이었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성을 어필하는 느낌이 강했다 두 사람의 출신지도 대조적이었는데 남진은 전남 목포의 갑부 집안 출신이었고, 나훈아는 부산 출신으로 아버지가 무역선 선원이어서 비교적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남진 집안에 비하면 서민에 속한 편이었다.

관련 이슈

2008년 일본 야쿠자와 여배우 k 를놓고 시비 고자 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일본 야쿠자에게 꽈추자르기를 받았다는 나훈아. 이런 헛소문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게 되자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굉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게 되지만 하지만 기자회견 중 갑자기 제가 지금부터 이 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이 요구하는 대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입고 있던 정장의 재킷을 벗고 단상 위로 올라갔고 , 그곳에서 바지의 지퍼를 내린 후 자, 지금 여러분들 중에서 대표로 애기해 주십시오, 제가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한 것입니다. 기자회견장은 난리가 났고 기자들은 미친 듯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같은 경우애 나훈아의 팬들이 나훈아를 믿는다고 외쳐 실제로 바지를 내리지는 않고 끝나게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김지미와 결혼, 그리고

1976년 7월 결혼선언을 하는 나훈아와 김지미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은 본문을 참고해 주세요.

스토커의 공격으로 얼굴이 찔려 72바늘을

1972년 6월 4일, 어느 스토커 같은 사람이 사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은 본문을 참고해 주세요.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킨

2018년 남북화목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때 북한에서 나훈아의 참석을 요구했던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은 본문을 참고해 주세요.